이정랑의 고전소통◉형벌독려(刑罰督勵)
輕重과 難易로 禁止한다.
상(商)나라의 법에서는 길거리에 재(滓)를 버리는 사람을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나중에 공자의 재자 자공(子貢)이 책에서 이 사실을 알고 처벌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자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그가 말했다.
“길거리에 재를 버리면 행인의 몸에 묻을 게 아닌가. 그러면 행인은 화가 나서 재를 버린 사람과 다투다가 두 집안끼리 살육전을 벌일지도 모르지 않나. 그렇게 되면 결국 근본 원인은 길에 재를 버린 데 있었으니 재를 버린 사람을 엄히 다스리는 것도 가능한 일이지. 중형은 사람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고, 길에 재를 버리지 않는 건 사람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네. 사람들이 지키기 쉬운 일을 하게 해서 그들이 싫어하는 형벌을 받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은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법이라네.”
중형으로 가벼운 잘못을 금하고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로 사람들이 하기 쉬운 일을 금하면 중형 아래 백성들의 행동이 통일되고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사라진다.
이건 매우 간단한 이치다. 사람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건 자기 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익 추구가 생활을 방해하고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 그들은 이익을 버리고 삶을 추구할 것이다. 군주든 소인이든 사람이 목숨을 잃으면 이익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튼 이렇게만 하면 청렴하지 못한 사람도 청렴한 사람으로 변할 것이다.
현명한 군주가 법으로 간사한 행위를 금하는 건 사람들이 법을 어기려 해도 어길 수 없게 하고, 남의 물건을 강탈하고 싶어도 감히 강탈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간사한 행위를 싹이 트기도 전에 근절하면 흉포한 자를 어질게, 간사한 자를 정직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럼으로써 평화로운 세상과 순박한 인심을 이룩할 수 있다.
노나라 사람들이 황량한 산을 태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북풍이 불어와 불길이 남쪽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은 도읍이 탈까 두려워 사람들을 시켜 불을 끄게 했다. 하지만 바로 곁에 있던 이들까지 산에서 내려오는 짐승들을 쫓아가는 바람에 불을 끌 사람이 없었다. 애공은 공자를 불러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짐승을 쫓는 건 재미있는 일입니다. 게다가 그것 때문에 벌을 받을 일도 없지요. 하지만 불을 끄는 건 힘든 일인데다 불을 꺼봤자 포상도 없는데 누가 불을 끄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애공은 사람들에게 상을 내걸고 불끄기를 독려했다. 공자가 다시 말했다.
“지금은 사정이 너무 급하니 상으로 일을 해결하는 건 너무 늦습니다. 게다가 불을 끄는 자들에게 다 상을 주면 온 나라의 재물을 다 긁어모아도 모자랄 겁니다. 차라리 형벌을 쓰는 게 더 낫겠습니다.”
그래서 애공은 다시 명령을 내렸다. 불을 끄지 않는 자는 적에게 투항하거나 패배한 자와 똑같은 죄로 다스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짐승을 쫓는 자와 금지구역에 들어가는 자도 똑같이 처벌하겠다고 했다. 과연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미처 명령이 다 전달되기도 전에 불길이 잡혔다.
본래 사람들이 불을 끄지 않고 짐승을 쫓는 건 재미도 있고 이익을 챙길 수 있어서였다. 그런데 애공과 공자가 짐승을 쫓는 일과 불 끄는 일의 이해관계를 거꾸로 바꿔놓자, 사람들은 불을 끄지 않으면 자신에게 해가되고 불을 끄면 이익을 보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앞 다퉈 달려가 불을 끈 것이다. 형벌로 사람들을 독려하는 건 무섭기는 하지만 효과는 훨씬 빠르다.
지금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이들은 건강사회 발전의 독버섯이요,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악성종양이다. 이들의 본업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상처를 입히는 아주 고약한 범죄 집단이다. 이를 제어하는 길은 오직 방지법안을 조속히 도입, 형벌로 다스리는 길 뿐이다. 가짜뉴스가 언론일 수는 없다.
필자 : 이정랑 언론인 (중국 고전 연구가)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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