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희가 직접 정한 조사 장소에서 검사들 불러서 조사
◼ 안전시설 이유로 검사들 조사 전 핸드폰과 신분증 제출
◼ 사건 피의자가 조사검사 신분증 확인하는 ‘희대의 촌극’
◼ 검찰 비공개수사, 정권 바뀌면 직권남용 수사받을 수도
김건희 여사가 지난 주말 명품백 수수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기습적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건희 여사는 본국 시간으로 지난 20일 종로구 창성동에 있는 대통령실 경호처 건물에서 13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다. 장소는 대통령실이 지정했고,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에게 사전보고도 없이 김 여사를 조사했다. 말이 조사지 검사들이 김건희 여사에게 불려 들어가 꾸지람을 들은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검사들은 조사 장소가 유출될 수 있다는 김 여사 측의 우려에 휴대폰을 반납했다.
김 여사 측은 몸 상태가 나빠지면 조사를 멈출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수사팀에 전달했다. 이제 갓 50세를 넘은 영부인이 건강상의 이유로 조사 중단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강도 높은 조사가 이어질 경우 너희들이 다칠 수 있다는 암묵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들 때문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조사를 마친 후 명품백 수수 사건 조사를 시작한 후에야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보고를 했다. 검찰총장에 보고한 시점은 토요일인 20일 밤 11시 16분경이었다. 본지가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취임 때부터 우려했던 일들이 그대로 벌어진 것이다. 죽은 권력 앞에 저승사자 같던 검사들이 대한민국의 사실상 최고권력 앞에 불려 들어가 휴대폰을 빼앗기고 조사 똑바로 하라나 다름없는 겁박을 듣고 온 지금의 대한민국은 나라도 아니다. <선데이 저널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본지가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이번 김건희 여사에 대한 조사는 조사가 아니라 가서 꾸지람을 듣고 온 수준이었다고 말한다. 김 여사 측은 “중앙지검에서 미리 총장에게 보고했다가 ‘성역 없는 수사’를 공언해 온 이원석 검찰총장이 부당한 지시를 내리거나 부적절 조치를 한다면 조사를 안 받으려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면서 “대검에 보고했다가, 김 여사 조사 사실이 유출되면 기자들이 다 조사 장소를 찾으려고 난리를 칠 게 뻔하지 않냐”며 “김 여사도 조사받을 생각이 있는데 이런 상황이 되면 조사를 못 받는다”는 뜻을 수사팀에 전달했다고 했다.
피의자 측이 검사 신분증 확인
김 여사 측은 그러면서 조사 장소를 직접 정부 보안청사로 제안했다. 이 때문에 이날 김 여사를 조사했던 검사들도 휴대전화를 사전에 제출하는 등 유출 소지를 차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조차 한 동안 검사들과 연락이 끊겨 어떤 조사가 얼마큼 진행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걸로 알려졌다. 검사들은 시설에 들어가며 신분증도 제출했다고 한다. 검찰청에서는 조사를 받는 사람이 신분증을 내고 방문증을 끊는데 되레 조사하는 검사가 신원 확인을 받은 희대의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모두 김건희 여사 측이 장소를 직접 정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일선 검찰청이 검찰총장을 건너뛰고 대통령실과 조사 장소를 거래한 형태가 된 것이다. 과거 기업총수를 비롯한 주요 권력자를 상대로 한 검찰의 방문조사는 특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조사는 경호처 건물로 사용되는 모처에서 통상적인 책상이 아닌 안락한 응접실 같은 느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안락한 소파 중앙에 앉은 김건희 여사와 그 옆에는 최지우 변호인이 동석했고 맞은편에 검사들이 앉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정자세를 취했던 여사는 중간 중간 다리를 꼬며 자신있는 목소리로 검사들의 질문에 답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언성도 높이며 항변했다는 후문이다. 검찰에서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조사 시점은 물론 조사 방식, 검찰의 태도 등이 ‘피의자’를 대하는 태도라고 보기에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영부인을 소환조사 한 게 아니라 영부인이 검찰을 소환한 것”이란 말도 나온다. 심지어 “왜 검찰 바깥에서 비공개로 수사했는지, 검찰수사 자체가 수사의 대상이 됐다”란 말도 나오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주말 밤에 보고를 받은 후 주변에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2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보고를 받은 후 대검 감찰부에 진상 규명을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측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은 총장에게 수사 지휘권이 없고, 총장이 수사 지휘권을 갖는 명품 가방 사건은 당일 함께 조사할지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사전에 소환 일정을 보고할 수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본지가 지난 5월 보도했듯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임명되면서부터 이번 조사와 이후 처분까지 사실상 ‘면죄부’를 주기위한 정해진 수순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이 지검장은 검찰 내에서 손꼽히는 윤 대통령의 충견(忠犬)이다. 본국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그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검사 출신 실세로 꼽혔던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 그리고 경찰 출신 실세인 박종현 대통령실 행정관과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 내 특별감찰팀에서 함께 일했다.
한마디로 윤석열 대통령의 참모들과 잘 호흡을 맞춰 김건희 관련 수사를 말아먹기 가장 좋은 인물이란 뜻이다. 이번 인사에 담긴 속뜻은 결국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정권이 넘어간다 하더라도 자기 손으로는 김건희 여사를 넘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창수 지검장을 전주지검장에 임명한 지 불과 9개월 만에 다시 국내 최대 지검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는 강수를 뒀던 것이다. 그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맡을 때 대검찰청 대변인을 맡길 만큼 신뢰가 두터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지검장이 친윤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건 이른바 ‘추-윤 갈등’이 불거진 이후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를 청구하자 검찰 내 반발 기류가 확산됐는데, 이 지검장 등 당시 대검 중간간부들이 직무 배제를 재고해 달라는 공동 성명을 낸 것이다.
김건희 특검 불가피한 상황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 성남 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기소했다. 한 마디로 이재명 전 대표를 탈탈 털은 데 일조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성남지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이 전 대표를 처음 소환하며 정권에 눈도장을 찍었다. 당시 이 대표는 대장동 의혹 등 몇몇 사건으로 서울중앙지검 등의 수사를 동시에 받았으나 다른 검찰청에서 그를 섣불리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지청장은 이미 2년 전 경찰이 수사를 통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던 성남FC 제 3자 뇌물자 사건을 재수사해 이 전 대표를 소환했다. 전주지검장이 된 뒤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서 모씨 사건을 다시 들춰내 수사에 들어갔다. 전주지검은 서모씨가 연루된 특혜 채용 의혹을 2019년부터 수사해왔다. 전주지검은 서씨가 2018년 항공사 타이이스타젯 전무이사로 채용된 것과 이 회사의 실소유주였던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임명된 것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스타 항공 창업주이기도 한 이 전 의원은 계열사 타이이스타젯을 설립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 등으로 1월 24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서씨 특혜 채용 의혹은 2019년 국민의힘 측이 처음 제기했고, 검찰은 2021년 12월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서씨는 2021년 다혜씨와 이혼했다. 서씨 외에 문 전 대통령과 이 전 의원도 각각 뇌물수수·뇌물공여 혐의로 입건됐다. 전주지검이 이 사건에 다시 속보를 낸 건은 이창수 지검장이 임명되면서부터다. 법조계 일각에선 이 지검장이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전주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야권을 겨냥한 수사를 지휘할 때부터 이 총장에 대한 불신이 누적되면서 이번 ‘항명’ 사태가 발생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둘 사이가 회복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란 것이다. 더구나 조만간 이뤄질 김 여사에 대한 처분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킬 요인이다. 이 총장은 오는 9월 퇴임 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 김 여사가 연루된 두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크다고 한다. 이 총장이 김 여사 조사에 대해 ‘법 앞에서 예외·성역·특혜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이 무너졌다고 시인한 만큼 김 여사를 기소하지 않더라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며 명품가방 수수 의혹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검찰 외부인사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할 가능성이 있다.
이 총장이 주가조작 사건 수사지휘권 회복을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재차 요구할 수도 있다. 이 총장이 올 초부터 박 장관에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지휘권 회복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총장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지휘권은 지난 2020년 10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에 의해 박탈됐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배우자인 김 여사가 사건에 연루된 것을 고려해 수사 지휘 라인에서 배제했다. 검찰총장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지휘권 문제는 이번 출장 맛사지 황제조사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 경우 이 총장과 대통령실·여권 사이에서도 충돌이 예상된다. 특히 이런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검찰은 반듯이 이번 김건희 수사 CCTV를 공개해서 의혹을 해소하지 않으면 이번 출장맛사지 수사는 불원간 국민적 저항을 맞을 것이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