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의 고전소통•군인민자(君仁民恣)
군주와 신하의 관계가 아버지와 자식 같으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며, 이것은 곧 부자간에 갈등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자식들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아니다. 자애(慈愛)에 있어서 어느 누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군주가 신하와 백성에게 자신의 모든 사랑을 쏟아 붓는다 해도, 그들이 빗나간 짓을 저지르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는 선왕(先王)이 천하를 두루 사랑하고 신하와 백성을 자식처럼 여겼다고 말했다. 이 말이 사실이더라도 역시 그때도 법을 어기는 자들이 있었으며 선왕도 형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범죄자에게 형벌을 가할 때, 선왕이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건 그의 마음속 인자함의 표현이다. 그렇다 해도 그는 계속 형벌을 이용했다. 눈물이 그의 마음을 약하게 하지 못했던 건 인자함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걸 그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하와 백성이 복종하는 건 군주의 권세 때문이다. 군주가 인자하기만 하면 그들은 방종해지기 십상이다. 공자는 천하의 성인으로서 행실을 닦고 도를 설파하며 여러 나라를 순례했다. 모든 사람이 그의 인의에 감복하였고 그를 위해 일한 제자가 칠십여 명에 달했다.
노나라 애공(哀公)은 공자와 동시대 인물이었다. 그는 재능이 평범한 군주였지만 권세를 이용해 노나라를 통일하여 감히 누구도 그에게 불복하지 못했다. 공자조차 머리 숙여 자신이 그의 신하임을 인정했다. 공자는 애공의 인의에 감복한 것이 아니라 그의 권세에 굴복한 것이다.
인의만을 따지면 당연히 공자가 군주가 되고 애공이 신하가 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권세에 의해 애공이 군주가, 공자가 신하가 된 것이다. 실제 상황을 놓고 보면 애공이 공자를 신하로 부렸으니, 권세가 인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지금의 학자들은 나라의 군주라면 인의를 행해야 하며, 인의를 행하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말할 뿐, 군주가 권세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이런 식이라면 어떻게 군주를 성공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제 권세의 실천이 우월한지, 아니면 인의의 실천이 우월한지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이해를 가졌을 것이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여기 말썽꾸러기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하자. 그는 배운 것도 없는데다가 도둑질에 싸움질만 일삼았다. 화가 난 부모가 버릇을 고치기 위해 꾸짖었지만 그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이웃사람들도 타이르거나 욕을 했지만 역시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스승도 훈계하고 행실을 고치길 바랐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처럼 그 누구도 그의 버릇을 고치지 못했지만, 나라에서 관리가 나와 권세에 의지하여 법을 집행하면 이 말썽꾸러기 아들도 틀림없이 두려워서 행실을 가다듬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를 가르쳐 사람답게 만들기에 부족했다. 이것은 부모의 책임이면서, 동시에 아들이 사랑만 받고 자라 성격과 행실이 오만방자해진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이런 사람은 사랑만으로는 가르치고 바로잡기 힘들다. 오직 권세와 위엄으로만 다스릴 수 있다. 사람은 모두 생에 연연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행동이 자기 생명을 위태롭게 하면 누구나 그런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거나 부정할 것이다. 일시적인 탐욕이나 쾌락보다 생명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직 나라의 형벌만이 이런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아무리 산을 잘 타는 사람도 몇 장 높이의 성벽을 오르지 못한다. 반면에, 절름발이 목동이라도 수백 장 높이의 산에 방목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벽은 가파르고 산은 완만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법이 엄격하면 범죄자가 적으며, 법이 너무 느슨하면 범죄자가 많아진다. 사람들은 이익을 쫓고 손해를 피한다. 보통 사람들은 천 한 두 필을 놓고서도 치열한 쟁탈전을 벌인다. 그런데 금 이천 냥을 용광로 속에 넣으면 아무리 큰 도둑이라도 그 속에 손을 넣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해로운지, 해롭지 않은지를 살피기 때문이다.
이명박 박근혜가 지위를 악용 사리사욕을 위해 양승태란 정신 나간 사람을 동원해 국법을 유린말살 할 때, 국가와 민중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찌 그들을 일러 통치권자라 할 것이며, 사법부 최고위 직인 대법원장이라 할 수 있겠는가. 결국 그들의 자작지얼(自作之孼)은 오늘의 차가운 영어(囹圄)의 몸이 된 것은 응분의 대가로써 천만번 당연한 도리요 법리가 아니던가.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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