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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古典疏通] 정치와 도덕은 상호 모순 관계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도덕의 이해(理解)

이정랑 칼럼 | 기사입력 2020/12/05 [00:57]

[이정랑 古典疏通] 정치와 도덕은 상호 모순 관계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도덕의 이해(理解)

이정랑 칼럼 | 입력 : 2020/12/05 [00:57]

[소진 蘇秦] 정치가는 도리를 지키기 어렵다고 변론하다

 

전국시대의 유세가인 소진(蘇秦)과 연왕(燕王) 사이의 변론은 정치와 도덕의 관계에 기준을 제시하는 사례로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소진이 연왕에게 말했다.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제가 증삼(曾參)처럼 부모에게 효도하고 미생(尾生.-노나라의 매우 정직하고 약속을 잘 지키기로 소문난 사람. 변통할 줄 모르는 고지식한 경우에 쓰는 말)처럼 신의를 지키며 백이처럼 청렴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아무리 절 비방하고 모함한다고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충분하게 그럴 수가 있을 것이오!”

 

소진이 다시 물었다.

 

“만일 제가 신의를 지키고 부모에게 효성스러우며 청렴결백하다면 대왕께서는 만족하시겠습니까?”

 

“만족하고말고요!”

 

“만일 대왕께서 이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전 대왕을 위해 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증삼처럼 효성스러우면 부모 곁을 떠날 수 없을 것이고, 미생처럼 신의를 지키려면 지모와 지략을 쓸 수 없을 것이며, 백이처럼 결백하면 정사를 돌볼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나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저는 신의를 중시하는 사람은 영달(榮達)하지 못하고 인의를 중시하는 군주도 다른 제후들을 누르고 패자(霸者)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왕은 소진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신의를 중시해선 안 된다는 말이오?”

 

“아닙니다. 물론 신의를 지켜야 하겠지요. 사람이 신의를 중시하지 않으면 사리에 통달할 수 없고 국가가 인정을 베풀지 않으면 통치가 이뤄질 수 없을 것입니다. 신의는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수단이지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신의는 옛것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한, 방법이지 진취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방법이 못 되지요. 삼왕(三王.-중국 상고시대의 세 왕. 곧, 하의 우왕, 은의 탕왕, 주의 문왕 또는 무왕)이 바뀌고 오패(五霸.-춘추시대 패업을 이룬 다섯 명의 제후왕, 제 환공, 진 문공, 진 목공, 송 양공, 초 장왕을 일컫는다)가 교체된 것은 모두 기존의 법칙과 원리를 지키는 데 맹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힘쓰는 사람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군주를 위해 일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왕께서 제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차라리 동주의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 지었지 아무런 발전도 없이 대왕의 궁중에 묻혀 살고 싶진 않습니다.”

 

연왕은 여전히 소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고대의 방법으로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단 말이오?”

 

소진은 여러 말을 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만일 그랬다면 초나라의 강토는 저수와 장수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진(秦)나라의 국토는 좁아터진 상우 땅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제나라의 국경은 여수를 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연나라는 하옥산과 구주산을 넘지 못했을 것이며, 진(晉)나라는 태행산을 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들이 국토를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고대의 법규를 지키지 않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정책을 폈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또 신의의 작용에 대한 구체적인 한계를 설정했다. 그는 개인이 신의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가가 신의를 지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개인이 신의를 중시하는 것도, 몸과 마음을 수행하는 데 국한되어야지, 남을 위해 일을 하면서 신의를 중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진에게는 신의란 아무 쓸모 없는 것이었다. 그가 신의로서 개인적 수양을 이룰 수 있다고 한 것은 신의를 중시하지 않는 자신의 성향을 은폐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소진의 변론에서 우리는 도덕이 쇠하고 정의가 상실됐던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상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중국의 전통사회에서 정치와 도덕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관료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 벗어나는 일일 경우가 많았다. 단지 통치자들이 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전국시대의 종횡가들은 대부분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극단적인 공리주의, 자들이었다. 소진의 이처럼 거리낌 없는 변론을 통해 우리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 해방과 그의, 솔직하고 대담한 언변에 경탄을 금하지 못한다.

 

소진의 동생 소대(蘇代) 역시 형의 이러한 관점을 그대로 계승했다. 하루는 연나라 왕이 소대에게 말했다.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가장 싫어하오.”

 

“제가 한 가지 예를 들지요. 주나라에서는 중매쟁이를 아주 경시했습니다. 양쪽 모두에게 좋은 말만 하기 때문이지요. 남자 집에 가서는 여자가 아주 예쁘고 착하다고 말하고 여자 집에 가서는 남자가 아주 부자라고 말하거든요. 하지만 주나라에는 스스로 배우자를 구하는 관습이 없었습니다. 젊은 여자는 중매쟁이가 나서서 소개해 주지 않으면 배우자를 구할 수 없었지요. 중매쟁이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여기저기 다니며 자신을 선전하다가 집안에 갇혀 영원히 시집을 못 가는 일도 있었답니다. 현지의 관습에 순순히 따르면서 자기 딸이 집안에서 늙어 죽지 않게 하려면 중매쟁이에게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라 권술에 의존하지 않고는 제대로 나라를 세우기 어렵고, 권세에 기대지 않고는 성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결국,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일삼는 것이지요.”

 

“정말 훌륭한 말씀이오.”

 

강도에게는 강도의 논리가 있는 것처럼, 거짓말하는 사람에게도 거짓말쟁이의 논리가 있다. 소대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지기는커녕 언사가 매우 침착하고 조리 있었다. 심지어 그는 거짓말을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일로 만들었다. 때로는 수치를 모르는 것도, 뛰어난 능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일부 검찰의 행태를 보면 위의 예와 일맥상통한다. 그들의 변명과 논리를 보면 검찰총장의 비위나 불법행위는 그 죄를 말하거나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인식처럼 보인다. 전제군주제 때 왕권인 절대권력을 답습한 그대로의 모습이요 사관이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현직 검찰총장이요 검사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는 설사 판사사찰 등 여타 위법 부당한 사실이 있더라도, 그를 시비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다. 검찰권 위에는 어떤 법도 있을 수 없으니 유구무언 하라는 은근한 압력이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더하여 야권과 그들을 대변하는 수구 적폐 언론 기레기들은 합세하여 연일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집중, 기득권 지키기에 광분하고 있으며 혹세무민에 혈안이다. 적폐의 온상이 무너지고 범죄의 복마전이 없어지는 날 그들은 더 기생(寄生)할 수 있는 터전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자가당착의 극치요 아전인수에 몰각된, 철면피한 행태이며 도족자마(盜足自痲)다.

 

필자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평론가칼럼니스트

메일 j643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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