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옛 서대문 형무소에 위치한 독립문앞에서는 애국지사 이병호 선생의 조촐한 영결식이 열렸다.
▲ 8일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난 고 이병호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 © 서울의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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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 이병호 선생은 일제 강점 말기인 1944년 당시 근무하던 조선상업은행에서 민족주의 조선독립사회노동당을 결성, 중국에 독립자금을 전달하려다 체포돼 5년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해방이 되어 풀려난 항일 독립투사다.
그러나 이명박 집단의 푸대접에 유가족과 독립유공자들은 영결식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선생 장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빈소가 마련된 신촌세브란스 병원측이 정산한 장례비는 1,000만원. 조문객들이 낸 조의금 512만원을 제외한 488만원은 고스란히 유족 부담이었다.
보다 못해 협회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탄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빈소를 찾은 비서관이 내놓은 것은 달랑 부조금 10만원에 이명박이라는 이름이 적힌 화환 하나였다.
▲ 문석진 서대문 구청장이 만들어 기증한 이병호 선생의 발 모양 기념판 © 서울의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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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협회 관계자는 "평생 나라를 위해 사신 선생에게 보훈처는 장례지원비 50만원, 사망위로금 150만원만 주고는 할 일 다했다는 식이다"며 "오늘 새벽 이 선생의 큰 며느리가 지인을 통해 잔금을 겨우 마련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영결식 또한 이명박 정권이 아닌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의 주도로 구청에서 지원 받아 치뤄젔다. 이 선생은 일제시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현재까지 생존한 세 분의 독립 애국지사 중에 한 분 이었다.
▲ 친일파 자식들은 대대로 떵떵거리며 사는데 ... ©서울의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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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떠나 보내는 김숙희(77)씨의 표정도 내내 어두웠다. 세 아들 중 둘은 사고로 몸을 다쳐 경제활동이 어렵고, 다른 아들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은 상태다. 더구나 정부에서 나오던 연금 240만원이 남편 사망 이후엔 절반으로 줄어 생활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이병호 선생 부부를 부양해온 큰 며느리 구묘정(52)씨는 "앞으로 어떻게 생계를 꾸려갈지 막막하다. 친일파 자식들은 대대로 떵떵거리며 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대대로 이리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병호 선생 마지막 가시는 길 사회를 보았던 역사복원신문 편집인 송태경 박사는 '독립협회 현직 회장님이 순직하시는 역사적 사건에 달랑 10만원 부조하여 유족을 비참하게 만드는 이런 정권이 어디있느냐. 일본 미국도 이럴것 같으냐. 역사와 백성과 조상의 희생을 알지못하는 자들이 부끄럽다'며 독립유공자 유족회 관계자들을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