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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을 재선거, 안해욱 10.1%가 정치권에 미칠 영향!

유영안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3/04/07 [11:21]

전주을 재선거, 안해욱 10.1%가 정치권에 미칠 영향!

유영안 논설위원 | 입력 : 2023/04/07 [11:21]

 

전주을 재선거, 안해욱 10.1%가 정치권에 미칠 영향!

 

전국적 관심을 끌었던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가 끝났다. 20일 남짓 현지 선거 캠프에서 홍보위원장 직을 수행했던 터라 느낀 바가 많아 몇 자 적어 보고자 한다.

 

갑작스러운 호출

 

지난 3월 17일, 백은종 서울의 소리 대표로부터 급히 전주로 내려오라는 전화가 왔다. 벽보, 공보, 현수막, 연설문, TV토론 등을 전담해줄 사람이 없으니 내려와서 일 좀 하라는 것이다. 대전에 머물면서 서울의 소리에 사설, 칼럼만 올렸던 필자는 전주을 재선거가 무척 흥미로웠다. 더구나 서울의 소리에 출연한 바 있고, 최초로 ‘쥴리’ 의혹을 제기한 안해욱 전 초등태권도연맹 회장이 출마한다고 하자 한 편의 재미있는 영화를 보러 가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전주을에는 윤석열의 장모 최은순과 20년 동안 법정투쟁을 했던 정대택 회장이 출마하려고 했으나, 최은순과의 법정 다툼으로 나중에 추가로 받은 1년 선고가 아직 5년이 지나지 않아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출마하지 못 하게 되었다. 그러자 후보가 갑자기 안해욱 회장으로 바뀌었는데, 이게 오히려 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안해욱 후보는 태권도 9단에 거침없는 언행이 이미 화제가 된 터라 ‘쥴리’ 의혹 제기와 함께 소위 ‘스타성’이 있었다.

 

12평의 선거 사무실

 

17일 오후, 전주 현지에 내려가 선거 캠프 사무실에 도착한 필자는 속으로 한탄을 했다. 효자동 신원 리브웰 상가 1층에 마련된 선거 캠프 사무실은 공간이 약 12평으로 책상 세 개와 원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원래 선거 사무실은 최소 40평, 많게는 100평 이상인 게 관례인데 12평 정도의 사무실에서 회계, 홍보, 사무, 운동원 교육 등을 모두 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다행히 사무실 앞에 아파트 정원이 펼쳐져 있어 피곤할 때는 나무 밑 그늘로 가 쉴 수 있었다.

 

선관위에 제출할 벽보, 공보, 현수막, 명함 등을 하룻밤에 모두 시안을 잡았고, 다음날 인쇄소에 넘겼다. 선거에서 후보 등록 절차는 엄청나게 복잡한데, 안해욱 후보 캠프는 이 모든 걸 5일 만에 준비해 드디어 등록을 완료했다. 어떤 예비 후보는 추천인 300명을 못 채워 등록을 하지 못했지만 안해욱 후보는 약 500명에 가까운 추천을 받아 등록했다.

 

23일부터 ‘고난의 행군’ 시작

 

23일부터 정식 선거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12평 남짓한 사무실에 선거 실무요원 및 운동원, 자원봉사자들이 들어차 움직일 공간마저 부족했다. 보통 선거 사무실의 경우 기획, 홍보, 회계는 조용한 곳에서 하는데 안해욱 후보 캠프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선거운동도 일반 선거와는 확연이 다른 집회형 선거로, 거기에는 서울의 소리 팀이 맹활약을 했다. 정태택 선대위 본부장은 코피만 세 번 흘렸다.

 

다른 후보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곡의 선거 로고송도 화제였고, 피켓을 들고 율동하는 사람들도 프로가 아닌 대부분 외지에서 온 지지자들이었다. 훈련되지 않은 이 ‘게릴라 부대’는 전주 시내 대형 도로 사거리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소리치고 그야말로 선거가 아닌 무슨 집회를 하듯 새로운 선거 운동을 선보였다.

 

물론 상대 후보들도 유세 차량이 돌아다니고 사거리에서 피켓을 흔들곤 했지만 안해욱 후보팀의 ‘게릴라 작전’에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안해욱 후보의 홍보가 주로 유튜브에 의존한 반면에 상대 후보들은 막강한 조직력을 총동원해 골목골목을 누볐다. 말하자면 안해욱 후보가 ‘공중전’을 펼쳤다면 다른 후보들은 ‘지상전’ 즉 각개전투를 펼쳤다.

 

유튜브 환상 깨달은 자성의 계기 되어

 

선거 운동이 진행될수록 안해욱 후보의 지명도가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엔 서울의 소리나 안해욱 후보 자체를 모르는 전주 시민들이 많았다. 백은종 대표도 이것을 깨닫고 후반부터는 골목을 누비는 선거 운동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유튜브를 본 사람들은 느꼈겠지만 전주 시내엔 거리에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유튜브를 보던 시청자들이 안타까워 사무실로 전화를 해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식으로 항의성 조언을 했는데, 어떤 사람은 막무가내로 화를 내 사무실 실무자들을 지치게 했다.

 

사무실에 선거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어 모든 걸 독학으로 해결하였고, 그 바람에 자잘한 선거법 위반도 있었다.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선거 캠프에 선거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는 최초의 기록이 될 것이다. 그만큼 안해욱 후보 캠프는 윤석열과 김건희에 대한 분노로 뭉쳐 있었다.

 

선거 공약이 즉 구호

 

전주에 내려온 지 20일 남짓된 안해욱 후보가 전주 개발에 관한 공약을 말한 것 자체가 모순이다. 안해욱 후보도 그 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전주에는 대한방직 터 개발 문제, 전주-완산 통합문제, 종합경기장 개발 문제, 황방산 터널 문제, 제2청사 신축 문제 등 현안이 많았으나, 안해욱 후보는 구체적 공약보다 국회 입성시 예산 확보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누가 당선되든 1년 동안 동안 공약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3월 23일부터 4월 4일까지 13일 동안의 정식 선거 운동이 끝나고 드디어 4월 5일 투표가 시작되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해욱, 강성희, 임정엽 세 후보가 1~2% 차이로 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었던 터라 막판 대역전을 예상했던 안해욱 후보는 선거 날 아침부터 몰아친 비바람을 걱정했다.

 

사전 투표율이 10.52%라 본투표도 투표율이 낮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최종 투표율은 26.4%였다. 투표율이 낮을 경우 두 가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 표가 조직표인가 바람인가 하는 것인데, 결과만 따지고 보면 조직표가 우세했다. 최종 개표 결과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39%,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임정엽 후보가 32%, 그리고 안해욱 후보가 10.1%를 얻었다. 대선 때 15%를 얻었던 국힘당 호보는 8%에 그쳐 망신을 당했다.

 

지고도 이긴 선거

 

보통 선거에서 지고 나면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낙담을 하는게 관례지만, 안해욱 후보 캠프는 오히려 승리를 거둔 분위기였다. 아무 연고도 없이 20일 만에 10%을 넘겼으니 다들 기적이라 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지고도 이긴 선거”라는 말인데, 이 형용모순이 준 의미는 매우 크다. 첫째, 국힘당이 대선 때 받은 15%에서 8%로 줄어 이준석이 추진한 서진 정책이 실패로 끝났고, 민주당에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했으며, 유권자에게 진심으로 다다가면 진보당 후보도 당선될 수 있다는 교훈을 아울러 남겼다.

 

내년 총선 때 민주당 제대로 된 후보 내야

 

민주당에도 한 가지 교훈을 주었다. 비록 이번 선거는 민주당의 귀책사유로 후보를 내지 않았지만, 임정엽 후보가 사실상 민주당 후보였는데 낙마했다. 박지원의 지원을 받고도 진보당 후보에게 진 것이다. 이것은 전주 시민이 민주당에 보내는 엄중한 경고다. 만약 내년 총선 때 민주당이 제대로 된 후보를 내지 못하면 진보당 후보가 다시 당선될지도 모른다.

 

민주당에선 현재 4~5명이 내년 총선 경선을 준비하고 있으나 윤석열 정권과 투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지키지도 못할 공약이나 나열하면 패배할 것이다. 아울러 유튜브만 가지고 선거를 좌우할 수 없다는 교훈도 얻었다. 적어도 국회의원이 되려면 1년 전에 현지에 내려가 주민들과 소통하고 지역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그저 인기몰이식 선거 운동으론 안 통한다는 것이 이번 전주을 재보궐선거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미완의 선거혁명

 

전주을 재선거는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지만 안해욱 후보가 20일 만에 얻은 10.1%는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변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20일 동안의 ‘전주의 추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 와중에 물심양면으로 뛰어주신 분들, 특히 송안산 여사와 이정녀 여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분들은 무엇을 해도 성공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과 따뜻함 마음이다.

 

12평의 사무실은 백범 김구가 머문 상해 임시청사였다. 백은종 대표는 묘하게 김구와 닮았다. 거리의 김구. 두루마기로 할머니를 꼬셨다는 말에 모두 박장대소했다. 전주의 추억은 즐겁고 슬펐다. 자, 이제 다시 윤석열과의 전쟁 터로 나갑시다. 의열단처럼, 한인애국단처럼, 김원봉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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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부범 2023/04/07 [23:38] 수정 | 삭제
  • 동감입니다! 거리의 김구 백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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