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검찰의 노골적 선거개입 인정…국정원의 댓글 사건과 유사
◼ 윤석열, 한동훈 개입여부까지 살펴봐야…검찰은 김웅의원 불기소
◼ 윤석열 감옥까지 갈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윗선개입 수사 주목
◼ 손준성은 검찰총장 수족 역할, 일개 검사가 독자행동가능성 제로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행태 중 하나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제3자가 고발을 해서 수사기관이 나서 압박해 정적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또한 여론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가족을 동원해 민원을 넣는 것도 같은 방법이다. 대표적인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수사 무마 의혹을 제기한 뉴스타파 보도를 제제하기 위해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가족들로 하여금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토록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윤석열 정부에서 내리꽂은 인사들이 각 기관으로 가서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내치기 위해 각종 내부 제보를 수사기관이나 언론에 제보해 움직이게끔 하는 사주를 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어왔다.
본국 시간으로 1월 31일 법원이 손준성 검사에게 고발사주와 관련해 유죄를 선고한 것은 현 정부의 이런 행태가 결국 윤 대통령이 즐겨쓰던 방식이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사실상 고발사주를 통해 선거개입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제기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과거 국가정보원 댓글공작 사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이 사건에 거품을 물었던 이유는 지난 정권이 국가기관인 국정원을 동원해 박 전 대통령에게 유리하도록 선거에 개입했고 이것이 정권의 정통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이 사건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수하를 동원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옥곤)는 31일 손 검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지만 공무상 비밀누설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다른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다. 다만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손 검사를 기소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징역 5년을 구형했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서 그 지위를 이용해 고발장 일부를 작성·검토했고 고발장 내용의 바탕이 된 수사정보의 생성·수집에 관여했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했다.
또 “이 사건 고발장은 검찰을 공격하는 여권 인사를 피고발인으로 삼았던 만큼 피고인에겐 고발이 이뤄지도록 할 동기도 있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한 이 사건 범행은 당시 검찰 또는 그 구성원을 공격하는 익명 제보자에 대한 인적사항을 누설한 것으로 그 책임이 가볍지 않다”면서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해 일반적인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에 비해 사안이 엄정하고 죄책이 무겁다”고 했다.
2020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 검사는 21대 총선을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부정적 여론을 형성할 목적으로 최강욱 전 의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과 관련 자료를 미래통합당 측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당시 미래통합당 예비후보)을 통해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장 부위원장에게 이같은 자료를 전달했다고 봤다. 법원은 특히 검찰이 지난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고발을 사주했다는 의혹의 주요 내용을 사실상 인정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지시 의혹
검찰 내부에서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검찰총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이날 법원은 손 검사장이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였던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고발장을 직접 전송했을 뿐 아니라 검찰이 고발장 작성에도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손 검사장과 김 의원 사이에) 설령 제3자가 있었다고 해도 중간에 끼어 있던 전달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직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연구관인 임홍석 검사가 고발장을 작성했거나, 최소 고발장에 적힌 내용을 검토·수정하기 위해 판결문을 검색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이런 사정은 고발장의 일부 작성·검토에 손 검사장이 관여했음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고발장에 수사기관에서 주로 쓰거나 공소장에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다수 포함된 점도 거론하며 “최소한 공소장을 써 본 사람이 작성하거나 검토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특히 재판부는 고발장의 작성·전달만으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객관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리적 이유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손 검사장이 고발장을 전달한 배경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손 검사장은 당시 여권 정치인이나 언론인을 고발하며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하거나 그 시도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했다”고 질타했다.
윗선 공모 여부
재판부가 검찰의 정치 개입 의도를 사실상 인정한 만큼 정치권과 법조계 전반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고발사주 의혹은 대선을 앞둔 2021년 9월 조성은 씨의 제보로 언론 보도가 이뤄지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국기 문란̓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면서 대선 기간 내내 정치적 공방의 주요 소재가 됐다. 공수처는 8개월간의 수사 끝에 대선 이후인 2022년 5월 손 검사장을 기소하고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은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공수처는 손 검사장을 기소하면서 김 의원과의 공모 관계가 인정된다며 사건 당시 민간인 신분이던 김 의원을 검찰에 이첩했다.
하지만 검찰은 같은 해 9월 공수처의 수사 결과를 뒤집고 “고발장이 전달된 경로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김 의원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날 법원이 공수처가 파악한 전달 경로를 사실상 인정함에 따라, 이런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아울러 손 검사장과 일부 검사들의 고발장 작성 관여 행위가 인정된 만큼, 당시 검찰의 ‘윗선̓ 관여 여부를 더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현 야권을 중심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은 검찰총장 직속 부대로 과거의 범죄정보정책관실로 불린 조직이다. 이 조직에서는 수사관들이 외부활동을 하며 각종 범죄정보는 물론이고 정치권 정보까지 수집하다가 문제가 된 바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정보는 곧바로 검찰총장에게 보고된다. 즉 수사정보정책관이란 검찰총장의 수족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그가 독자적으로 이런 일을 할 확률을 제로에 가깝다.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씨와 장모 최모씨 관련 사건을 체계적으로 관리 대응해 온 정황이 과거 드러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시절인 2020년 3월 당시 손 수사정보정책관이 윤 대통령 가족에 얽힌 형사 및 민사 사건과 관련된 문건 파일을 최소 15개 이상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이 윤석열 검찰총장 가족사건 방어를 위해 사실상의 ‘사설 로펌̓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론된다.
윤 정권서 잇따르는 사주
결국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제2의 국정원 댓글 사건처럼 윤석열 정부의 정통성에 치명적 상처를 입힐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유죄가 나올 때 본국 언론은 “이번 판결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이 무너졌음을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원장이 불법적으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해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도왔기 때문이다. 이 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총장이 국가기관인 검찰 조직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유독 윤석열 정권에서 고발사주니 청부사주니 하는 것들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동안 검찰은 정치적 중립 따위를 얘기하면서 여당이나 시민단체들이 고발하면 못 이기는 척 수사해왔다. 자기한테 유리한 것들은 수사력을 총동원해서 수사하면서, 불리한 것은 캐비닛에 뭉개는 방식이 검찰이 사건을 주무르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최근 본국에서 언론탄압의 도구로 사용되는 방송통신심의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방통위가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수사 무마 의혹을 제기한 뉴스타파 보도를 제제하기 위해 류희림 위원장이 가족들로 하여금 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토록 한 것이다. 가족이 민원을 넣고, 자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위원회가 민원이 들어온 매체를 징계하는 웃지 못 할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윤석열 캠프 출신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갔던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 보수 매체가 언론재단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이사장 등이 검찰 고발을 당했는데, 언론재단에서는 이걸 보수매체에 제보한 인사로 낙하산 인사를 꼽고 있다. 한 마디로 제 3자를 시켜서 고발하고 민원을 넣어서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인사를 찍어내고,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며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상황을 만들어 가는 모양새인데, 이것은 고발사주 때 부하직원을 동원해 제3자에게 사건을 고발케 만든 윤석열 검찰이 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개 버릇 남 못준다는 말이 딱 이럴때 쓰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