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한 학파의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데, 히포크라테스 학파는 가족처럼 생활과 숙식을 다 같이 하다시피 했다. 의사 공부를 할 한 명의 제자를 들인다는 것은 한 명의 가족을 들이는 것과 같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다, 은사를 부모처럼 여기겠다는 식의 언급이 나오는 건 의술을 배우는 과정이, 마치 한 대가족의 일원이 되어 매순간 보고 듣고 따라하며 배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리 써진 것이다.
의술은 사람의 몸이 대상이기 때문에 교육에 불가피하게 시간이 걸린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은 실험이 불가능하다. 자동차 엔진을 정비하거나 정밀기계 수리를 하는 엔지니어들도 오랜 시간을 공부해야 하지만, 학문의 깊이를 떠나서 의술은 마음대로 생체를 분해하거나 조립할수 없다는 것이 여타 직종과 구분되는 특이점이다. 게다가 사람의 몸은 1000명이면 1000명이 전부 다르다. 결코 교과서만 읽으면서 배울 수가 없다.
예컨대 모든 외과적 수술의 술기는 동일하다. 절개, 박리, 절제 혹은 복구, 지혈, 봉합의 순이다. 그 수많은 수술들이 전부 이 획일적인 과정을 따른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절개를 가하여 실제의 외과적 수술을 행할 수 있으려면 선배들이 어찌하는지를 계속 옆에서 지켜보고 조수가 되어 함께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마취와 생체활력징후를 관찰할 경험도 아주 많이 필요하다.
제아무리 단순하고 흔한 수술이라도 결코 책이나 영상을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집도가 서툰 초기에는 반드시 선배나 스승의 감독이 있어야만 한다.
물론 변호사들도 엔지니어들도 프로그래머들도 처음에는 그리하면서 일을 배울 것이다. 허나 의술의 행함에 있어서는 하나의 과실도 치명적일 수 있고 하나의 무지도 용납이 거의 되지 않고 의사가 행한 거의 대부분의 과실은 비가역적이다. 배우는 과정에서의 조그만 구멍이 있다면 거기서 비롯된 과실은 환자 한 명의 일생을 망칠 수 있다.
그러니 의학 교육에는 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강한 리더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겠다며 의사 수부터 무조건 때려 늘리겠다는 공약은 너무 무모했다.
내가 외과의사가 되어온 과정을 돌이켜본다. 수련의때 칼을 들고 처음 집도를 했을때 젊은 주니어 교수가 칼을 쥐어주고는 내가 하는것을 지켜보았다. 피부를 절개할 때 어느 정도의 힘을 주어야 하는지, 메스 날의 각도가 어때야 하는지 계속 붙어서 설명해준다. 그리고 개입했다가 다시 칼을 맡겼다가 했다.
처음에는 오로지 단순한 일만 분담할 수 있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이 칼을 맡기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로소 한 명의 외과의가 탄생한다. 이게 의술의 교육 과정이다. 그러니 한 명의 교수가 수백명의 학생을 칠판에 글씨 쓰며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지금의 이 난리통에 중요한 빌런이 빠져있는데, 의협이 아니라 병협이다. 그들은 언론에도 한번도 거론되지 않는다.
많은 종합 병원들이 대체로 족벌경영 체제를갖는다. 차병원 백병원 제일병원 등등. 이런 큰병원들은 경영권을 세습한다. 그리고 사실상 일반회사처럼 이윤을 가족친척끼리 나눠갖는다.
최대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전문의 수를 줄이고 싼 임금의 전공의들을 최대한 채우며 병원을 경영한다. 의료개혁을 하려면 종합병원들이 전문의를 지금보다 두 배는 넘게 고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수련의 펠로우들은 잡일을 시키는 노예가 아니라 실제로 의술을 배우는 사람들이 되도록 해야 많은 부분의 왜곡이 바로잡한 것이다. 의료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나 좀더 포괄적으로 고차원방정식을 푸는 느낌으로 하나하나 풀어나가길 바란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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