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마당집 문 열었소' 어려울수록 살아나는 백기완 정신장녀 백원담 "마당집은 박제와 기념의 공간이 아닌 내일의 싸움을 주도하는 이들을 위한 사랑방"
서울 혜화역 3번 출구 골목 안쪽 2층 벽돌집. 1990년부터 ‘통일문제연구소’라는 현판을 달고 재야 학자·운동가·노동자들의 사랑방 구실을 해온 곳이다. 이곳이 ‘백기완 마당집’이라는 이름의 기념관 겸 전시·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6일 오전 10시께 통일문제연구소가 사무실을 '백기완 마당집'으로 새로 단장해 개관식을 열었다. 고 백기완 소장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3개월 만이다.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에도 백 소장의 '노나메기 세상(너도 나도 일하고 올바르게 잘 사는 세상)' 정신을 기억하는 약 300여 명의 사람들이 좁은 골목길을 가득 채웠다. 백 소장이 결혼식 주례를 섰던 부부부터 고인과 연대한 노동자들은 물론 시민들까지 다양한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어려울수록 살아나는 백기완 정신
오전 10시 40분께 개관을 알리는 만장을 든 노동자가 앞장서자 꽹과리·장구·태평소를 연주하는 놀이패가 뒤따르며 마당집 골목 한 바퀴를 돌았다. 가락에 맞춰 서로 손을 맞잡고 춤추는 모습이 낯선 듯 인근을 지나던 행인들도 잠시 멈춰 구경했다.
이날 개관식 축사에 나선 백 소장의 장녀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아버지는 1988년 '벽돌 한 돌 쌓기' 운동을 통해 이 마당집(당시 통일문제연구소)을 만드셨다"라며 "(대문 기둥) 돌에도 적혀있듯 이곳은 반독재민주화와 해방통일운동의 거점이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곳은 일상·전선에서 싸우는 모두를 위한 곳"이라며 "아버지는 자신을 역사에 박제하시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다. 이이니 언제든 오시라"고 말했다.
신학철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이사장도 "여기 오신 분들은 백기완 선생과 함께 싸워온 분들이고, 이 마당집은 여러분들의 집"이라며 "백 선생이 살아있을 때처럼 똑같이 민주·통일·노나메기 사랑방 구실을 할 테니 많이 사용해 달라"고 덧붙였다.
임진택 명창은 '비나리와 질라라비' 불림 공연을 통해 "여기 모인 우리는 딱 한 발 떼기에 목숨을 걸라는, 기죽지 말라는 선생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썩어 무너진 자본주의 문명 너머 세상, 돈이 주인이 아닌 일하는 사람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고자 모였다."며 개관식에 참석한 모두가 백기완 정신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한평생 통일·노동·민중운동에 헌신했다. 백 소장은 한일협정 반대운동(1964년) 백범사상연구소 설립(1967년) 후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운동(1974년)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YMCA 위장결혼 사건(1979년)으로 고문을 당했고, 권인숙 성고문 사건 진상 폭로대회(1986)를 주도한 혐의로 옥고를 치렀다.
백 소장은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에도 대선에 출마해 완주했다. 백 소장은 이후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노동·통일문제 등에 힘써왔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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