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이재명 대표의 애완견 발언 논란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 출석하기에 앞서 기자들을 만나,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제3자 뇌물 혐의 등으로 검찰이 자신을 기소했다는 언론 보도를 두고 “마치 검찰의 애완견처럼 주는 정보를 받아 열심히 왜곡·조작을 하고 있지 않으냐”고 말했는데, 이 발언에 대해 다수의 언론들이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대표는 대북송금 사건이 “희대의 조작 사건”이라며 “동일한 사건을 동일한 법원의 다른 재판부가 전혀 다른 판단을 해서 상반된 결론이 났는데, 왜 이런 점은 한 번도 지적하지 않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의 이런 발언에 대해 정확한 앞뒤관계를 따지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의 분위기는커녕 오직 애완견 발언에 대해서만 물고 늘어지는 형국이다.
우리 헌법은 언론의 자유에 대해 정확한 명시와 그에 대한 보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언론의 자유, 즉 언론의 권리는 대폭 확대된 반면 직업적인 책임감과 윤리의식은 오히려 퇴화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기레기라는 단어가 보편화된 상황이다. 특이한 사실은 원래 기자들이 일삼아 왔던 병폐들은 언론이 생긴 이래 항상 있었던 일이었지만, 과거에는 묻혔던 병폐들이 현재는 통신매체와 SNS의 발달로 빠르게 부각된다는 사실이다.
언론은 언론학자들 사이에서 흔히 개에 비유되곤 한다. 그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워치독(Watchdog)과 랩독(Lapdog)이다. 워치독은 ‘감시견’을 뜻한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감시하며 자유주의 체제의 가치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건강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던 워싱턴 포스트지의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는 언론의 워치독 역할이 현실세계에서 구현된 가장 좋은 예로 꼽히곤 한다.
랩독은 말 그대로 권력의 애완견 같은 언론을 뜻한다. 주인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달콤한 간식을 받아먹는 그 안락함에 취해버린 언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랩독은 결코 권력구조에 비판적일 수 없다. 다만 거기에 동화되고 기생할 뿐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언론이 이런 비판을 받은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현재의 기득권 언론이 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검찰발 받아쓰기 기사에 심취하여 스스로 취재하는 능력을 상실한 채 권력에 빌붙어 권력을 빨아주는 기사만 써대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알권리가 이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언론을 지칭하는 또 하나의 용어가 등장했는데, 바로 가드독(Guard dog) 즉 경비견이다. 언론 그 자신이 기득권 구조에 편입되어서 권력화 되었고, 그래서 권력을 지키려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들이 지키려 했던 대상을 향해서도 공격적이 된다. 물론 그것은 지키려 했던 대상의 권력이 약해졌을 때, 혹은 지키려 했던 대상이 자신의 이익과 반하게 될 때의 이야기이다. 박근혜와 공생관계에 있던 TV조선이 박근혜를 공격하던 상황을 되새겨 보면 된다.
언론을 향해 애완견이나 기레기라는 용어가 통용된 것은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언론에 대한 기대치가 그만큼 크기 때문에 그 실망감에서 나온 용어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그 기대치와 실망감이 언제나 반복되어 나타나다 보니 아직도 언론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스스로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기를 한다면, 그리고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이 아닌 국민의 알권리에 충실한 언론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애완견언론이나 기레기라는 용어는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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