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현재 공화당 후보로 공식 선출된 상태이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이미 바이든 현 대통령에 우세한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인지장애가 심각한 지경에 이른 고령의 바이든은 이미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용의자로 알려진 20세의 토마스 매튜 크룩스는 현장에서 비밀경호국 저격수의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1865년 제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워싱턴DC의 한 극장에서 남부 출신의 배우 존 윌크스 부스의 총탄에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에서는 암살된 대통령만 네 명에 이른다. 1881년에는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가 정신질환자의 총에 맞아 숨졌고, 1901년에는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가 무정부주의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가장 최근 사례는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를 하던 중 리 하비 오즈월드에게 저격당해 사망한 것이다.
암살 시도 사건도 적지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인 1981년 워싱턴 시내에서 어떤 남성이 쏜 총탄을 가슴에 맞았으나 응급 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다. 해당 용의자는 여배우 조디 포스터의 열혈 팬으로 밝혀졌으며, 그녀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암살을 시도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후 그는 정신질환로 판정으로 받고 34년간 치료감호 끝에 2016년 석방되었다. 28대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즈벨트,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 등도 연설 중 총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또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뒤 38대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는 살인마이자 사이비 교주인 찰스 맨슨의 추종자 등에게 2년여간 두 차례나 암살 시도를 겪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이 유독 정치인을 향한 암살 및 암살시도가 많은 이유는 바로 총기소지를 합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방어용 총기로서 소유할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해석하기 나름일 뿐이다. 미국내 수많은 정치인들이 총기 판매 금지를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지만 결국 총기 제조 및 유통업자들의 로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총격범은 본인의 부친이 합법적으로 구매된 AR-15 소총을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각종 총기 난사 사건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했던 고성능 소총이 급기야 전직 대통령이자 유력 대통령 후보의 암살 시도에 악용되면서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사회의 해묵은 총기 규제 논쟁이 다시금 불거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총기 규제를 반대해 온 공화당 내부에서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범행에 사용된 AR-15 소총은 미국 내에서만 약 2000만정 정도가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유력 정치인에 대한 암살시도가 꾸준히 있어왔다. 가장 최근에는 2024년 1월 2일 10시 29분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항동 대항전망대에서 가덕도신공항 건설부지 시찰 후 이동하면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하던 도중 살해 의도를 품고 접근한 남성이 준비하고 개조한 양날형 검에 목을 찔린 정치테러 살인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내가 이재명' 이라는 글귀가 적힌 파란 종이 왕관을 쓰고 사인을 요청하는 척하며 지지자로 위장하여 접근해 흉기로 목을 습격했다. 이 남성은 이 대표의 도착 전 미리 현장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본 것으로 파악됐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을 향한 암살 미수사건도 끊이지 않았다. 1971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같은 해 5월 25일에 치러지는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유세가 진행되었다. 지원유세에 나섰던 5월 24일, 김대중이 탄 차량과 14톤 대형 트럭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원래는 목포에서 비행기를 타고 수원으로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원인 미상의 결항으로 인해 차량을 이용하여 광주로 이동하던 중에 사고가 일어났다. 김대중은 이 사고로 인해 양팔 정맥과 골반 관절 부위에 큰 부상을 당해 장애의 몸이 되기도 했다.
김대중을 향한 테러는 김대중의 일본 망명지에서도 버젓이 자행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된 이듬해인 1973년 8월 대한민국 중앙정보부가 유신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재야 정치인 김대중을 향한 납치 및 살인미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담하게도 일본에 있었던 김대중을 백주 대낮에 납치하고 태평양에 빠뜨려 죽이려고 했으나, 미국 중앙정보국에게 배의 위치가 탄로나는 바람에 계획 실행을 포기하고 결국 김대중은 일본 도쿄에서 실종된 지 닷새째 되던 날 밤에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자택 앞에서 풀려나기도 했다.
한편, 당시 유력 정치인이던 김영삼을 향한 암살 미수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69년 6월 20일에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이던 국회의원 김영삼(당시 41세)을 암살하기 위해 승용차에 괴한들이 질산병을 투척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영삼은 당시 박정희가 장기집권하기 위해 헌법을 바꾸려는 3선 개헌에 반대하고 있었다. 국회연설이 있었던 6월 20일 저녁식사 후, 저녁식사 후 자신의 승용차로 상도동의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는데, 검은색 작업복을 입은 두 명의 청년이 골목길을 가로막고 서로 싸우는 시늉을 하며 김영삼의 차량을 막아섰다. 위협을 느낀 김영삼이 운전기사에게 "분명 나를 해치려는 놈들이다. 치어 버려도 상관없으니 밀어붙여라!"라며 차를 출발시키게 하여 기사는 경적을 크게 울리며 전진했다. 그러자 괴청년 중 한 명이 무언가가 담긴 유리병을 던졌고, 병은 차량 후미의 유리창에 부딪혀 박살났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차에서 내려 보니 심한 악취와 함께 차량 도색이 우글우글하게 녹아내려 있었던 것이다. 또 범행 현장을 조사해 보니 아스팔트 일부도 녹아내려 있었다고 한다. 경찰의 감식 결과 질산으로 판명되었는데, 당시 김영삼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을 강한 어조로 비난하고 있었던 터라 박정희 정권의 테러로 추측되었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우 유력 정치인에 대한 암살 미수사건이 박정희 시대 국가기관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에도 링컨이나 케네디의 암살 사건처럼 결국 끝내 배후를 밝히지 못했다. 또한 최근에 발생한 이재명 대표의 암살 미수의 경우에도 사건현장을 물로 청소하여 현장보존 자체를 방해하는 등 배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존재하기도 한다. 또한 암살이 성공하지 못하니 검찰을 동원하여 정치생명을 끊어버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정치인을 향한 물리적 테러도 분명 문제지만 수사와 기소를 동원한 검찰 폭력도 다분히 문제이며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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