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김규나 지지자들은 나를 페삭해달라""삶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이는, 죽음과도 제대로 만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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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마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66) 세종대 명예교수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줄곧 비난해온 소설가 김규나(56)씨를 저격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유하 교수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규나라는 작가를 지지하는 분들은 나를 페삭(페이스북 친구 삭제)해 주시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작가의 무기이자 방패인 언어를, 그렇게까지 저열하게 사용하는 ’작가‘를 나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박 교수는 "10년전, 내 책을 둘러싸고 진보가 갈렸는데, 이번에 보니 한강 작가 책을 둘러싸고 보수가 갈린 것 같다. 한일 문제에 대한 발언을 하다 보면 보수쪽 분들이 나를 우파로 오해하며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라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 이후로 그 경향은 더 심해졌었다"라고 고백했다.
이어 "하지만 내 정치적 스탠스는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나는 고작 한 표지만 투표할 땐 진영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전체를 위해 투표한다"라며 "보수성향의 페친 분들 대부분은 온건보수로 여겨졌던 분들이고, 뒤늦게 페삭한 극우적 보수페친은 적지 않다. 내게 있어 온건이란 세상과 마주하는 태도를 말한다"라고 자신의 정치관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윤 대통령에 대한 미움을 담아 굥이라 부르던 이들이 있었는데, 그녀는 한발 더 나갔다"라고 5.18 광주항쟁에 대한 김규나씨의 인식이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경도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 교수는 "5.18을 몽땅 부정하는 이들에게 5.18은 도대체 어떤 사태였나. 전라도 혐오도 가세한 폭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문제의식은커녕 오히려 전라도 혐오를 섞어 한강 작가를 비방하는 글까지 봤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소년이 온다>를 읽지 않고 얘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국가의 만행을 다루고 있지만 정치적인 소설이 아니다. 몇몇 표현만 봐도 안다"라며 "작가가 죽음에 대해 쓰는 건 김규나씨가 오해/곡해한 것처럼 대한민국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김규나씨는 지난 13일 페이스북에서 "국가 권력이 죄없는 광주 시민을 학살, 국가 권력이 무고한 제주 양민을 학살했다고 소설마다 담아낸 한강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존립을 부정하는 작가"라며 "(노벨문학상) 수상은 축하는커녕 국민이 대노할 일"이라고 비난했다.
언론사 기자와 작가가 왜 다른 것인지 그 차이점을 대입한 박 교수는 "누군가의 죽음이 슬픈 건 빛나는 생명의 한순간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란 보지 못한 일조차 본 것처럼 쓸 수 있는 이들"이라며 "신문 기사라면 숫자에 불과한 이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피와 살을 가진 인물로 만들어 우리에게 보내주는 이들이다. 물론 그러려면 남다른 감수성과 세상을 향한 섬세한 촉수가 필요하다"라고 작가를 정의했다.
박 교수는 "그가 빚어낸 언어가, 잊고 있었거나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고 들려줄 때, 우리는 그것을 문학이며 예술이라고 부른다"라며 "삶과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이는, 죽음과도 제대로 만나지 못한다"라고 마지막에 적었다.
명색이 등단 작가인 김규나씨가 오히려 소설을 쓰는 창작자의 인식보다는 정치적인 사고에 머물러 한강 작가의 작품을 폄훼해 같은 작가로서 안타깝다는 취지로 읽힌다. 김규나씨는 현재 조선일보에 ‘소설 같은 세상’이란 제목의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인터넷 매체 '스카이데일리'에 단편소설도 연재하고 있다.
한편, 박유하 교수는 책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지 8년 6개월 만에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8부는 "앞선 항소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각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 표명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성 사실 적시로 보기도 어렵다"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