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반역자 대미 사대주의 전쟁 선동 조선일보 폐간 위해 대한국민이 나서자부질없지만 질문을 던져본다. 기자들에게 전쟁은 좋은 소식일까?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짓이라는 전쟁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언론인의 보도 태도를 대하면 더욱 그렇다. 넘치고 넘치는 외신 전쟁 기사 중 웃어른들의 심기에 맞을 것 같은 것만을 골라 적당히 배열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기레기는 없을까? 이런 자들에겐 전쟁은 최고의 선물이리라. 기레기에겐 인류애나 양심, 동정은 절대 금물이다. 그들에겐 동물적인 감각이나 야수적인 승부욕만 있으면 그만이다.
조선일보는 트럼프와 네타냐후(트네)가 공모하여 저지르고 있는 이란 침략에 관한 기사로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3월 1일에 파리 특파원인 원선우 기자가 이란의 여자 초등학교 폭격 사건을 보도했다. 오폭이라 믿고 싶지만 굳이 인근에 군부대가 있었다는 내용을 읽으니 화가 치민다. 제목 중에 ‘폭사’라는 말이 걸린다. 기사 내용 중에는 희생자들의 시신과 사체라는 말이 섞여 쓰이고 있었다. 짧은 지식으로는 사체는 주로 사람을 제외한 동물에 주로 쓰이는 말로 알고 있다. 원기자가 경황 중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면 지금이라고 꼭 수정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희생자보다 사망자라는 어휘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조선일보이니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고 하면 달리 할 말은 없다.
이번 트네 침략 전쟁에서 보도 영웅이라 부르고 싶은 김수경 기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3월 1일에 "미국은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긴말 필요 없이 미국의 침략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강자가 하는 일은 언제나 정당하다는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 떠오른다. 김 기자가 내리는 결론은 너무나 간단하다. 대한민국은 ‘미·중 사이 줄타기’라는 외교 기술을 부리지 말고 미국에 무릎을 꿇으라는 말이다. 방가조선일보의 원조인 방응모는 ‘영미격멸(英米擊滅)’을 외쳤고 지금 조선일보는 미국만이 살길인 양 부르짖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기회주의자 조선일보이니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시간상으로 보아 김수경 기자가 이란의 초등학교 공습에 관한 기사를 이미 읽었겠다고 짐작된다. 바빠서 읽지 못했다면 그만이지만 읽고도 이런 글을 썼다면 김 기자를 인간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겠다. 그가 말하는 ‘그럴 수’에 초등학교에 대한 폭격도 들어갈 수 있으려니 말이다. 최소 175명으로 추정되는 무고한 아이들이 트네의 만행으로 생명을 잃었는데도 미국은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고 말한다면 그를 더 이상 사람으로 부른다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래도 조선일보는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고 한다면 그러려니 하겠다.
3월 10일에는 박국희 주미 특파원이 ‘이란 초등학교 오폭 지적에 트럼프 “이란도 토마호크 더 있었더라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기사를 읽으면서 어리둥절했다. 뻔한 거짓말을 하는 트럼프를 나무랄 조선일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멀쩡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트럼프를 나무라는 일 자체는 의미 없다. 하지만 이 기사를 읽으며 조선일보 기자들 사이에는 ‘미국은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라는 철학이 공유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조선일보이니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한다.
3월 11일에는 조선일보 양지호 기자의 ‘단독’기사가 올랐다. ‘한미연합훈련 시작한 날, 지휘 벙커에 브런슨 없었다’라는 제목이다. 과연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조선일보는 현 정부가 남북 사이의 대화와 평화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의 연기나 축소를 시도했다면 꾸준히 문제 삼았다. 그런데 정작 한미연합훈련을 시작한 날, 한미연합사령관이 없었다는 얘기다. 보도의 속뜻이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모두가 우리 정부의 책임이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다시 떠오르는 말 ‘미국은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 조선일보엔 미국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대한민국의 잘못인 뿐이리라.
같은 날 주희연 기자는 ‘성주 사드도 중동행’이라는 기사를 올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반대 의견을 냈지만 관철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했다. ‘미국은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는 말을 절감한다. 조선일보는 대한국민의 끈질긴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주 사드’의 중요성을 주장해 왔다. 특히 사드는 북한 핵 위협 대응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떠들어댔다. 또한 한미동맹의 신뢰와 확장된 안보 협력의 상징이라면서 성주 사드의 필요성에 열을 올린 집단이 바로 조선일보다. 이 시점에서 조선일보의 사드의 무단 철거에 대한 궤변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미국이니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3월 12일 자 국제면에는 ‘어른들은 왜 전쟁을 하는 거죠’라는 애절한 제목과 함께 사진이 2장 올라왔다. 당연히 트네의 침략 전쟁에 시달리는 이란 아이들의 사진이려니 생각했다. 사진 설명을 보니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어린이란다. ‘전쟁의 여파가 중동 각지로 번지면서 취약계층인 어린이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음흉스러운 문장도 보인다. 침략자 이란 때문에 무고한 중동 어린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미국 어른들이야 전쟁을 할 수도 있고 해도 되지만 이란은 아니라는 말일 테다. 이 정도면 아무리 조선일보라도 참아주기 어렵다.
김수경 기자의 명언대로 ‘미국은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라고 치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특히 사드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변하던 조선일보는 더 이상 대한민국 편이 아니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미군의 일방적인 사드 무단 철거 조치가 과연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대한국민이 공유해야 한다. 이 지경이면 그들이 우리를 지켜주리라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더러 목숨을 내놓으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그들의 노상 강도짓에 대비해야 할 때다.
해방 직후에 민중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노래가 있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 속지 마라, 일본놈 일어나고, 되놈(중국놈) 되 나온다, 조선놈 조심해라.’ 놈이라는 점잖지 못하게 들리나 트럼프나 네타냐후에게는 과분하다. 이런 광인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날뛰는 2026년에 대한국민이 다시 떠올릴 노래다. 믿을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그렇다고 함부로 남을 내치자는 말은 아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며 기왕 세계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대한국민이 나서자는 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배반하는 신문을 가장한 전쟁 선동세력 조선일보는 반드시 폐간하자. 대한국민이니 그럴 수 있고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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