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병신취급하지 말라.” 한국 언론인의 대명사 송건호가 남긴 ‘한국현대언론사’를 읽으며 발견한 사설이다. 그 사설을 읽으면서 당신이 왜 그 책을 썼는가를 헤아릴 수 있었다 . 사설이 나온 시대적 배경부터 톺아보자.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통해 언론사는 물론 제1야당까지 통제 또는 ‘관리’하고 있었다. 대통령선거 개입혐의로 최근 1심 재판을 받은 국정원으로서는 박정희 시대가 ‘황금시대’ 일 법하다.
박정희는 대통령 3선을 위한 개헌을 염두에 두고 중앙정보부를 통해 언론 장악에 한창이었다. 그래서다. 제1야당 신민당―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제기자협회(IPI)를 비롯한 국제기구에 한국의 언론 탄압을 호소하고 나섰다.
그런데 생게망게한 일이 벌어졌다. 언론탄압을 국제사회에 알린 야당에 대해 조선일보는 ‘신민당에 충고한다’ 제하의 사설을 통해 ‘언론단체에 대한 모욕적 표현을 취소하라’고 부르댔다. 들머리에 인용한 ‘병신론’은 중앙일보 사설이다. 중앙일보는 “한국 언론의 자주성을 얕보고 언론을 병신 취급하지 말라”고 분개했다.
송건호는 ‘언론계가 감사히 생각하기는 고사하고 신민당을 정면에서 비난 반박하고 나섰다’고 개탄하며 언론인들 스스로 권력에 굴복했다고 기록했다.
후배 언론인들인 우리는 지금 당시의 상황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송건호가 보기에 ‘언론을 병신 취급하지 말라’는 사설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다. 굳이 그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그만한 병신이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병신 취급하지 말라’는 그 말이 요즘 새롭게 다가온다. 당시 조선일보는 물론, 모든 신문과 방송이 3선 개헌에 이어 유신체제 선포에 찬동하고 나섰다. 사실상 종신대통령제인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는 “앞으로의 보다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얻기 위하여 진정 알맞은 조치임을 기쁘게 생각”하며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라고 민망할 정도로 용춤 추는 사설을 냈다. ‘병신 취급하지 말라’는 주장은 자신들이 군부독재에 굴복해서가 아니라 자진 협력하고 있다는 선언 아니었을까.
실제로 조선일보는 오늘 이 순간까지 박정희 찬가를 읊어댔다. 조선일보 고위 간부들은 사설에서 주장한대로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얻었다고 자평할 수도 있을 듯하다. 대부분 권세와 부, ‘명예’까지 누렸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도 그러지 않았을까. 일본 왕의 사진을 1면에 도배질하고 제호까지 내려 일장기를 편집하면서 비판하는 독자들에게 “언론을 병신취급하지 말라”고.
기실 자신과 제 가족의 행복만 추구한다면, 그렇게 걸어갈 수밖에 없을 터다. 친일 지식인의 자식들, 군부독재와 손잡은 지식인의 자식들은 호의호식하며 살았고 저마다 미국 유학으로 대한민국 곳곳에서 ‘엘리트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다. 2014년 오늘, 언론의 정체를 또렷하게 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찬가를 읊은 그 언론들이 지금 박근혜를 적극 비호하고 있다.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질 때부터 소극적 보도로 일관해 온 그들은 실제로 검찰수사를 통해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곰비임비 드러나자 올곧은 검찰총장을 날리는 데 동참했다. ‘혼외 자식’ 없는 수사팀장도 날아갔다. 마침내 사법부가 정치개입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라는 사법역사에 남을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언론은 한 점 비판 없이 ‘상황 종료’를 주장했다. 더는 좌시할 수 없었던 현직 부장판사가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며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 글을 법원 게시판에 올렸다. 그러자 그 글에 대해서도 독과점 신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난하고 나섰다.
어떤가. 부장판사 김동진의 글은 언론인이라면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내용이 담겨 있지 않은가.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관하여 의연하게 꿋꿋한 수사를 진행하였던 전임 검찰총장은 사생활의 스캔들이 꼬투리가 되어 정권에 의하여 축출되었다. 2013년 9월부터 10월까지 검사들을 비롯한 모든 법조인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밝히려고 했던 검사들은 모두 쫓겨났고, 오히려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덮으려는 입장의 공안부 소속 검사들이 국정원 댓글사건의 수사를 지휘하게 되었다.”
용기 있는 그의 호소가 사실무근이라 할 수 있을까? 의심이 간다면 마땅히 지금이라도 사실관계를 취재해야 기자 아닌가?
대한민국 법치가 무너지고 있을 때 한국 언론은 어디에 있었을까. 김동진이 지록위마의 고사를 언급할 때 내 앞에 떠오른 것은 조중동의 숱한 보도와 논평들이다. 그가 2012년 대선에서 여야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고 밝히며 정쟁으로 바라보지 말 것을 호소했는데도 조중동은 ‘정치적 편향성’으로 매도하고 있다. 그들은 과연 ‘병신’인가.
아니다. 그들이 이미 오래 전에 선언했듯이 언론을 병신취급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바로 그들이 지금 제1야당에 ‘훈수’를 두고 있다. 더 기막힌 노릇은 그 훈수에 솔깃 하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묻고 싶다. ‘병신’은 누구인가.
언론계 안팎에서 알다시피 나는 김대중 집권 이후 민주당을 비판해왔다. 제1야당이 어이없이 무너지는 오늘 되짚어보고 있다. 내가 그들을 ‘과대평가’해온 게 아닐까.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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